Saturday, September 29, 2018

[목회수상] '훗날의 열매' (09/30/18)






노인은 뜰에 묘목을 심으며 잘 자라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젊은이가 그 모습을 보고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선 언제쯤 그 나무에 열매가 열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60년쯤 지나야 열리겠지.”  그런데 노인께서는 그때까지 사실 수 있으시겠어요?”  젊은이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었던 노인이 대답했다. 
물론 그때까지 난 살 수 없겠지.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 과수원에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렸었다네.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나의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나무를 심어 주셨기 때문일세.  나도 내 할아버지처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네.   -탈무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과 풍요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미래를 바라보고 심은 꿈의 결실일 것입니다.  탈무드도 이런 지혜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 성장은 그 옛날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젊은 선교사 아펜젤러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도, 신앙을 가지고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 선배들의 피와 땀 때문이었습니다.  탈무드의 지혜서를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펼쳐지게 될 찬란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아틀란타에 있을 때,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클레런스 조단 부부와 마틴 잉글랜드 부부 1942년에 코이노니아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평화주의, 평등, 그리고 인종통합의 정신을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때에는, 코이노니아 공동체가 남부지역 사람들로부터는 환영 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노예들이 평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클레런스 조단 목사는 조지아대학(UGA)에서 농학을 전공했고, 남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배운 농업 지식과 목회를 결합한 코이노이아 농장을 통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인종과 계급 없이 평등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펼치게 됩니다.  그리고 농장 지역에 피칸(Pecan)을 심어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피칸 나무는 잘만 심겨지면 몇 대에 이르도록 그 혜택을 누리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현재 조지아주는 피칸의 최대 생산지이기도 합니다.  후대를 위해서 심겨신 피칸 나무와 코이노니아 공동체의 정신은 지금 같은 평등과 공평의 시대를 열어 주었습니다.  남부 조지아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지역에서 평등과 부 두가지 모두를 심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고, 지금은 그 결실을 가지고 또 다른 피칸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시 한번 지금 순간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 나갈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신비이고, 오늘은 선물이다(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mystery, today is gift)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미래가 우리 자녀들에게 올지 모르지만, 오늘을 선물로 기억하고 감사하며 만들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후대에게 새로운 선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보] 어바인 드림교회 (09/30/18)



Saturday, September 15, 2018

[목회수상] 인생의 바다로 보내진 우리 (09/'16/18)




작년 목회자 학교 총무를 하면서 플로리다에 있는 Key West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Key West는 플로리다의 맨 끝에 여러 섬들이 연결된 곳입니다.  이곳은 Key Lime파이와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가 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바다에서 처절하게 사투를 벌이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조각배를 띄워 고기를 잡는 산티아고는 이웃 소년 마놀린과 함께 배를 타는 것이 작은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84일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자, 사람들은 살라요’(최악의 사태, 완전한 몰락)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소년의 부모도 소년을 다른 배의 조수로 보내 버리고 맙니다.  홀로 남은 산티아고는 먼 바다로 홀로 배를 저어 나갑니다.  그리곤, 오랜 사투 끝에 그는 낚시대로 거대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고 맙니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가운데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노인과 노인의 물고기를 공격합니다.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노인의 배에는 앙상하게 남은 고기 뼈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노인은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하게 됩니다.
노인과 바다는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노인과 같이 바다에 던져진 존재.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해도, 상어 떼가 달려들어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괴로운 현실.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한 것 같지만, 그곳에 던져진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산티아고와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산티아고처럼 성경에도 바다와 같은 곳에 던져진 존재들이 늘 존재합니다.  광야에 던져진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 땅에서 이방인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바벨론에 끌려간 남유다의 젊은 청년들.  모두 바다에 혼자 남겨져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잡은 큰 물고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삶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업적을 나타내는 삶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지켜 나가며, 그분의 존재를 감사하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잡았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지, 어떤 물고기인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에 더욱 더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함께 집중해야 할 일은 주님이 주신 바다에서 보내주신 분의 뜻을 따라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바르게 감당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드릴 때, 온전한 믿음의 성장과 성숙이 우리 안에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만들고, 세워 나갈 교회의 모습일 줄 믿습니다.  큰 생선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게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셨던 주님과의 이야기가 나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족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보] 어바인 드림교회 (09/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