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기간 예수님이 태어난 마구간의 모습을 한 Nativity Set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곳에 여러 등장 인물들이 있지만, 오늘은
마구간에 찾아온 목자들의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시는 이익상 목사님의 글을 참고하여
나누려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양치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늘
그림에서 봐 왔던 멋진 모습만은 압니다.
미쉬나(Mish. Kidd. iv.14)에서는 목자들을 부정한 직업 중의
하나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목자들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고, 목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 가운데
정직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양과 염소를 치는 목자들의 많은 수는 고용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양과 염소를 소유하고 있는 부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양과 염소들을 가족들만으로는 돌볼 수
없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목자들을 고용해서
그들에게 양과 염소들을 몇 백 마리씩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구두로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광야는 양과 염소를 노리는 늑대, 여우, 하이에나들이
득실 거리는 생존의 전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양과 염소를 지키는
과정에서 목동들은 자기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람 생명이 우선이기 때문에 계약을 할
때에는 목자의 의무로 양과 염소를 최선을 다해 지킬 것을
요구하지만, 목자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에 포기할 수 있는 양과
염소의 수를 정해 두었습니다.
문제는 목동의 머리 속에는 그 계약의 내용을 가지고 주인 몰래
한 두 마리 챙기기 시작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자들이 가장 유혹 받는 기간은 1월경입니다.
바로 양과 염소가 출산을 하는 시기입니다. 목장 주인들은 많은
수의 양과 염소들 가운데 몇 마리의 새끼 양과 염소가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주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목자들입니다. 태어나는 새끼 양과 염소 중에 몇
마리는 내다 팔아서 자기의 호주머니를 채울 수도 있고, 몇
마리는 잡아 먹을 수도 있고, 몇 마리는 자기 집에 가져다 놓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계약의 허점과 자기가 가진 위치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 만 있다면, 일년 몇 십 마리 양과 염소를 뒤로 챙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이렇게 고용된 목자(삯군 목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요 10:7-18)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일들이 예수님의 비유에 인용되리 만치 당시에는 비일비재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유대 땅에서의
첫 소식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예수님께서는 삯꾼이 아닌 참 목자로 이 땅에 오셔서 자기의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하는 어바인 드림교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저마다의 양과 염소가 있고,
예수님처럼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목자로 서게 될지는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이 세상에 참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참 목자가 되어서 그 작은 하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성탄절이 주님 앞에 나를 참
목자로 드리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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