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16, 2015

[목회수상] 다른 모습 속에 아름다움






















아들 3명을 가진 집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3명을 미술학원에 보냈는데, 3명이 미술학원을 좀 다니더니
 모두가 다 미술가가 되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뜩이나 가정 형편도 어렵고, 3명이 모두 미래가 불확실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지도 모르는 미술을 한다기에
 아버지가 걱정이 이마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3명에게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오라고 했습니다.  
 가장 잘 그린 사람을 뽑아 미술을 계속 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3명은 열심으로 한 달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아들이 가져온 그림은 너무나 완벽했습니다.  
 구도, 비율, 원근법까지 완벽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이 정도면 둘째 아들 그림은 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는데,  

둘째 아들이 가져온 그림은 구도와 비율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앉아서 고민하는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고
 그림을 보는 순간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고민하고, 고뇌했는지에 대해서 의자 모서리에 걸 터 앉아 
있는 불안한 모습까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깊은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그림이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둘째 아들에게 기울 때,  

셋째 아들이 그림을 내밀었습니다.  
그림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었습니다.   
셋째 아들은 그 그림을 들고 있으라고 하면서,  
자신이 의자에 앉아 아버지가 들고 있는 그림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면서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  
본인 스스로가 앉아 있는 고뇌하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마치 천재 미술가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누구를 골라야 할까요?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에 나온 이야기는 미술사를 대변하는 세가지 입장을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첫째 아들은 절대주의-고전주의,  
둘째 아들은 상대주의-낭만주의,  
셋째 아들은 회의주의-현대미술을 대표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도 여러 가지 해석과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이 미술입니다.

바로 교회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가 중심이 되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제자훈련이 중심입니다.  
 어떤 교회는 봉사가 중심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그 안에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말씀하시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잃어 버릴 순 없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늘어나는 불편함을 놓고 이야기하다가 
예수님이 뒷전에 밀려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해외선교를 열심으로 하는 교회가 동내에서 차갑고 사랑 없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해외선교보다 지역선교가 먼저일 것입니다.  
 예배를 너무나 열심히 드리는 교회가
 예배를 마치고 세상 속에서 삶으로 드려져야 하는 예배에 등한시 한다면,  
예배자로서의 삶을 다시 한번 뒤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Harmony(조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양함 속에서 
하나됨을 보여주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지역도, 성별도, 학업도, 좋아하는 색깔과 드라마도
 혈액형도 다른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로 모였을 때
 각자의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은혜의 공간 안에서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어바인 드림교회 여러분,  
다름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다양하지만, 하나되는 아름다움이 있는 여러분의 가정, 직장, 학교, 교회
 우리 어바인 지역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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