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복음주의자처럼 준비하고, 오순절주의자처럼 설교하며,
신비주의자처럼 기도하고, 사막 교부처럼 영적 훈련을 행하며,
가톨릭처럼 예술을 사용하며,
자유주의자처럼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싶다.”
설교자가 가지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복음자의 마음이 있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언제든지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오순절주의가 미국에서 꽃 피운 곳이 바로 이곳 LA의
아주사(Azusa)에서 1906년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LA 제 2침례교회에서 쫓겨난 흑인 목사 윌리엄 시무어 목사가
아픔 가운데 교인들과 함께 가정에서 시작된 모임이 커져서,
아주사에 있는 마구간으로 사용되던 건물 안에서,
형식도 시간도 제약 없이 예배 드리면서, 아주사 성령 대부흥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순절주의자처럼 설교한다는 말은, 열정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묵상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이 주님이 주신 삶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자처럼 기도한다는 말은, 청교도들이 즐겨 하던
관상기도(Contemplation Prayer)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좀더 친밀한 기도의 형태로, 나를 만나는 기도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의 순간을 말합니다.
물질이 삶의 최우선이 되어버린 우리의 세상 속에서,
빠르게 변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 속에
정적인 기도와 깊이 있는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도와주는 기도인 것입니다. 깊이 있는 기도의 삶이
주는 유익인 것이죠.
사막교부들처럼 영적 훈련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고난을
자처하면서, 그 속에 담긴 고난을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1년에 40일 동안 사순절을 통해 절제와 고난에
참여하는 모습이 우리 삶에 있듯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 신앙생활의 큰 힘이 됩니다.
카톨릭은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전합니다.
그림과 음악을 통해서 주님의 창조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그런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전하는 것,
바로 주님의 주신 창조의 능력으로 주님을 알리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안에 있는 악에 문제를 하나님의 정의로
세워나가는 사회정의(Social Justice)는 우리에게 세상을
비추는 빛과 세상을 썩지 않게 도와주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좋은 모습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세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변화시킬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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