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고전 중의 최고는 단연 챨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일 것입니다. 주인공인 스크루지(Ebenezer Scrooge)는 자린고비에 인정이라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입니다. 디킨스는 스크루지를 표현할 때,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속의 차가움이 그의 늙은 인물상을 냉각시켰고, 그의 구부러진 매부리코를 더욱 뾰족하게 했으며, 그의 눈을 충혈 시키고, 그의 얇은 입술을 퍼렇게 만들었으며, 거슬리는 목소리로 카랑카랑하게 말을 뱉어 냈다.”
스크루지의 이름은 영어에서 인색함(miserliness)과 염세(misanthropy)에 대한 상투어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디킨스가 그린 영국 사회는 노동력 착취와 가난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스크루지 밑에서 일하는 밥 크라칫 가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스크루지와 같은 사무실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장시간, 저임금으로 착취 당하는 가난한 노동자들 중 한 명 이었습니다. 밥의 딸인 마사는 모자를 만드는 곳에서 일을 합니다. 한창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모자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의 아들인 피터는 양복점에서 힘든 일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들 티모시는 목발의 의지해서 걷는 장애인입니다. 신실한 기독교인인 티모시는 교회에서 성탄주일 예배를 마치고 다녀오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이 지체장애인들을 고쳐주었으니, 나는 예수의 사랑을 받을 사람이에요"라고 아버지인 밥에게 말합니다. 저임금노동자인터라 아들을 병원에 데려 가지도 못하던 밥은 이런 낙천적인 아들이 고맙고 기뻐서 아내에게 자랑을 합니다. 스크루지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가난, 노동력 착취, 질병, 차별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영국 사회가 기독교 국가였음에도 사회 전반에 걸쳐서는 가난과 차별이 만연해 있음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를 경험한 스크루지는 삶이 완전히 변하고 맙니다. 밥에게 월급을 올려주고, 티모시를 돌보아 줄 것을 약속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읽는 영국의 독자들이 느꼈을 전율을 상상해 봅니다.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도 19세기 영국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금요일 새벽 오렌지 카운티에서는 대대적인 홈리스 이주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버스가 동원되고, 경찰관들과 사회보장 요원들이 분주하게 홈리스들을 이주시켰습니다. 멕시코 국경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노숙을 하며 성탄절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호피 인디언 마을에는 지금도 알코올 중독과 마약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미국 땅의 모습은 겉모습은 화려하고 멋지지만, 추위와 고통을 뼈 속까지 느끼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우리 주변에 지금도 존재합니다. 어쩌면 스크루지의 변화는 매년 성탄절 우리의 마음 속에 던지는 울림과 같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돌보고, 그들의 가족을 돌보고, 우리의 이웃을 돌보며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소외 받던 목자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은 기쁨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이번 성탄절에는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미치도록 함께 나누고, 사랑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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