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의 책,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는 이 시대를 위한 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탈무드에 나오는 글 한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랍비가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엘리야를 만난 랍비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랍비: "선지자님, 메시아는 언제 오실까요?"
엘리야: "직접 가서 그분에게 물어 보시오"
랍비: "그럼, 그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엘리야: "아마, 성문 근처에 앉아 계실거요."
랍비: "그럼, 메시아를 제가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습니까?"
엘리야: "메시아는 온 몸이 상처 투성이인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 계실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가 다시 한꺼번에 싸 매지만, 그 분은 한 번에 한 군대 씩 상처를 풀었다가 다시 싸매십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아마 내가 필요하게 될거야. 그때 잠시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만 해'라고 혼잣말로 말씀하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가장 먼저 상처를 받으셨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상처입은 치유자’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도 예수님의 못자국을 만져보고 요한복음 20장 2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분의 상처로 치유 받고, 그분을 통해 소망을 얻게 됩니다. 누구보다 우리의 상처의 아픔을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큰 상처로 우리를 치유하여 주십니다. 누구 상처가 더 크냐?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상처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모습 가운데, 상처 입은 치유자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가지 질병이 의학적으로 구분이 되고, 예전에 교회에서 치유했던 부분들도 대부분 현대 의학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상담학도 더욱더 세분화 되고 발전되어서, 예전처럼 목회자와 상담하면서 치유하는 부분도 교회 안에서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신앙 공동체로서 상처받은 지체를 함께 돌보고 기도하며 치유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교회의 역할 중 중요한 부분이 세상이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를 함께 치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다워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상처받은 치유자들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공동체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들이 교회를 찾는 사람들을 반겨주고, 맞이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닌,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다른 상처들을 치유해 나가면서 그 존재 목적을 발견할 때, 예수님도 그 안에서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선교도 내가 받은 은혜, 치유 받은 상처를 가지고 선교지로 찾아가, 더 큰 아픔을 함께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예배도, 나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경험이요, 주님께 나의 치유함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결단의 순간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은 상처나 큰 상처 모두 함께 상처입은 치유자로 동참하고 아파할 때, 우리 주님이 우리 교회 가운데 늘 동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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